부산 기장군 정관읍에 산업용 펌프를 만드는 회사가 있습니다. 1969년부터 원심펌프와 기어펌프를 만들어 발전소, 조선소, 석유화학 공장에 넣는 곳입니다. 직원 160명이 넘고 발전 5사 기자재 공급 유자격을 가진, 국내 산업용 펌프 시장에서 손꼽히는 규모의 회사입니다.
8월 말에 발전 공기업 협력사 지원사업 컨설팅으로 이 회사를 방문했습니다. 이 글은 그 방문에서 재고를 어떻게 찾고 확인하는지 한 시간 동안 지켜본 기록입니다. 방문의 배경이 된 지원사업은 정부 지원으로 AI를 도입하는 세 갈래에 정리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재고는 부족하지 않았습니다. 부족한 것은 재고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를 아는 사람의 수였습니다.
1. 주문마다 다른 펌프를 만드는 공장
이 회사의 펌프는 규격품이 아닙니다. 발전소 복수펌프, 해수취수펌프, 양흡입펌프처럼 현장마다 사양이 다릅니다. 주문이 들어오면 그 사양에 맞는 부품을 모아 조립합니다.
그래서 재고의 성격이 다릅니다. 같은 임펠러가 백 개 있는 것이 아니라, 비슷하지만 다른 임펠러가 열 종류씩 있습니다. 어느 주문에 어느 부품이 맞는지는 도면과 사람이 같이 알아야 합니다.
2. 대형 펌프 옆에서 들은 첫 번째 질문
조립 현장에는 사람 키를 넘는 원심펌프가 놓여 있었습니다. 담당자가 처음 한 말은 이랬습니다. "이 주문에 들어갈 케이싱이 창고에 있는지부터 봐야 합니다."
있는지를 시스템에서 보지 않고 창고에 가서 봅니다. 시스템에 없는 게 아닙니다. 시스템의 숫자를 믿기보다 눈으로 확인하는 쪽이 빠르고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3. 바닥에 펼쳐 놓고 세는 이유
창고 한쪽에 임펠러와 주조 부품이 바닥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담당자는 그 앞에 서서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이유를 물으니 답이 단순했습니다. "장부에는 다섯 개라고 돼 있는데 하나는 가공 중이고 하나는 반품된 겁니다. 그건 장부에 없어요."
즉, 장부와 실물 사이에 세 가지 상태가 끼어 있었습니다. 가공 중인 것, 검사 대기인 것, 반품된 것. 이 상태는 담당자 머릿속과 현장 메모에만 있었습니다.

4. 출하장의 목상자도 사람이 기억합니다
출하장에는 목상자 포장이 줄지어 있었습니다. 상자마다 라벨이 붙어 있지만, 어느 상자가 어느 주문의 몇 번째 출하분인지는 담당자가 알고 있었습니다.
담당자가 휴가를 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전화합니다." 그 답이 이 회사만의 답이 아니라는 것을 저희는 여러 공장에서 들었습니다.

5. 사무실에서 따라가 본 재고 확인 순서
사무실로 돌아와 담당자가 재고를 확인하는 순서를 처음부터 따라갔습니다.
- 주문서에서 부품 목록을 확인한다
- ERP에서 재고 수량을 조회한다
- 현장 메모와 카톡에서 가공 중·검사 대기 여부를 확인한다
- 창고에 가서 실물을 본다
- 확인 결과를 다시 엑셀에 적는다
다섯 단계 중 ②는 3분이었고 ③④⑤가 30분이었습니다. 시스템은 빨랐습니다. 시스템에 없는 상태를 사람이 채우는 시간이 길었습니다.

6. 문제는 재고가 아니라 상태입니다
이 공장에서 배운 것은 하나입니다. 재고 관리의 어려움은 수량이 아니라 상태에서 옵니다. 가공 중, 검사 대기, 반품, 출하 대기. 이 상태가 시스템 밖에 있으면 숫자가 맞아도 믿을 수 없습니다.
저희가 만드는 그룹웨어에서 재고를 물어보면 답하게 하려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ERP의 숫자만 답하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현장 메모와 결재와 출하 기록이 같은 자리에 쌓여 있어야 "케이싱 다섯 개 중 두 개는 가공 중"이라고 답할 수 있습니다.
7. 결국 중요한 건, 장부가 아니라 장부 밖의 세 줄입니다
이 회사의 담당자는 누구보다 재고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지식이 그 사람 안에만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장부 밖에 있던 세 줄, 가공 중·검사 대기·반품이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면 전화하지 않아도 됩니다.
현장을 열어 주신 담당자분께 감사드립니다. 회사 이름은 담당자 확인 후 적겠습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ERP에 재고 상태 필드를 추가하면 되지 않나요?
필드를 추가해도 현장에서 입력하지 않으면 비어 있습니다. 입력이 결재나 작업 기록의 부산물로 저절로 남아야 유지됩니다. 상태를 따로 입력하게 만드는 순서는 대부분 실패합니다.
Q. 주문 생산 공장도 재고를 AI로 답하게 할 수 있나요?
ERP 재고와 현장 기록이 같은 자리에 있으면 됩니다. 규격품 공장보다 상태 종류가 많아서 오히려 효과가 큽니다. 다만 먼저 현장 메모가 어디에 남는지부터 정리해야 합니다.
Q. 방문은 어떤 기준으로 하나요?
견적, 재고, 작업일보처럼 사람이 매일 반복하는 서류 업무가 있는 제조 현장이면 방문합니다. 첫 방문은 진단이고 비용은 없습니다.
재고 확인에 사람이 매번 창고로 가는 공장이라면 Austenite로 이야기 나누러 오세요.
앞으로 더 도움이 되는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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